이 세계에는 두 얼굴이 있다. 사람이 나고 살다 죽는 인간계, 그리고 네 신이 다스리는 사신계다. 둘은 멀리 떨어진 다른 땅이 아니다. 한 장의 종이에 앞과 뒤가 있듯, 서로가 서로의 이면이다. 오가는 일은 드물었어도 두 세계의 기운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도 함께 탈이 났다.
두 세계를 함께 붙들고 있던 것은 음양오행의 흐름이었다. 사신계에는 다섯 자리가 있었다. 동쪽의 청룡은 木, 남쪽의 주작은 火, 서쪽의 백호는 金, 북쪽의 현무는 水였다. 네 신은 기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곧 하나의 행(行)이었다. 한가운데에는 土의 자리가 있었다. 나무는 불을 살리고, 불은 흙을, 흙은 쇠를, 쇠는 물을, 물은 다시 나무를 살렸다. 살리는 흐름이 넘치지 않도록 서로를 누르는 흐름도 함께 돌았다.
가운데 土의 자리에는 土의 신이 있었다. 네 신과 함께 다섯이 모여 세계는 온전했고, 등을 맞댄 두 세계는 그 가운데를 이음매 삼아 맞닿아 있었다.
어느 때인가 그 자리가 비었다. 土의 신이 사라진 것이다. 까닭을 아는 이는 없고, 전하는 말도 권속마다 다르다. 가운데가 비자 살리는 고리도 누르는 고리도 끊겼다. 넘친 기운은 폭주가 되었고, 고인 기운은 썩어 악령이 되었다. 무너진 신계의 기운은 이면을 타고 인간계로 번졌고, 사람들의 일상에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土
빈 가운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었다.
오행 다섯을 모두 타고나는 것은 사람뿐이고, 土의 기운을 품은 것도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신은 영원해도 사람은 나고 죽는다. 그래서 土의 자리는 대를 이어 물려받거나 계시를 받은 이가 이어 가야 하는, 끝나지 않는 자리가 되었다.
사신계의 존재들은 빈자리를 메울 것을 찾아 이면을 넘어 인간계로 내려왔고, 사람을 잡아갔다. 사람들은 까닭을 모른 채 신이 노했다고 여겼고, 제물을 바쳐 그 노여움을 달래려 했다. 두려움 속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와 원한은 오래 고여, 마침내 악신이라 불리는 것들을 낳았다. 악령을 쫓는 일을 업으로 삼은 퇴마가문들이 여럿 일어난 것도 그 무렵이라 한다.
그러나 제물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사람들은 바치는 대신 손을 잡기로 했다. 사람과 사신계가 맺은 이 약조를 사방협정이라 하고, 그 약조를 지키려 세운 곳이 사방협정본부다.
사람은 누구나 네 신의 가호를 품고 태어나고, 본부에 들면 그 가호가 깨어난다. 본부 사람 가운데 악신과 악령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야차라 부른다. 야차는 가호만으로 싸우기도 하고, 사신계의 존재와 반려를 맺어 서로의 힘을 나눠 쓰기도 한다.
오늘도 종로의 본부는 평범한 관청의 얼굴로 문을 연다. 순환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가운데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다.